산 이야기/나의 수다게시판

월간산 1월호에 나온 우리 J3클럽

장꼬방/강성덕 2009. 1. 21. 17:09
         [화제모임] J3클럽, 100km 무박산행으로 인간한계에 도전한다

백두대간 종주를 10~12구간으로 나눠 무박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석 달만에 끝내고, 낙동정맥을 5구간으로 끊어 종주를 마치는가 하면, 또 50㎞ 이상 장거리 무박 산행은 기본이고, 30㎞ 정도는 가벼운 단거리로 여긴다면?


듣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산악회가 있다. 바로 J3클럽이다. J3는 지리산 3대 종주의 이니셜이다. 지리산 3대 종주는 화엄사~대원사 무박종주(일명 화-대 종주), 성삼재~천왕봉~성삼재 무박 왕복종주(일명 주능선 왕복종주), 덕산~천왕봉~노고단~바래봉~인월 간 태극무박종주를 말한다. 지리산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전국을 대상으로 태극종주와 환종주에 장거리 코스를 개발하며 누비고 있다. 모두 한숨도 자지 않고 꼬박 밤새워 걷는 달인들 모임이다.


▲ 백두대간 종주를 10구간만에 끝낼 J3회원들의 출정식.

2003년 9월 배병만(43)씨가 장거리 산행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그는 연예인 경호를 담당했을 만큼 무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태권도 6단에 검도도 단증을 가진 고수다. 태권도 선배들이 ‘연예인 경호’를 비난하자 바로 그 길을 접었다. 다시 태권도로 돌아왔다. 지금은 대구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산은 20대 때부터 다녔다. 친구와 같이 오른 산이 이렇게까지 깊이 관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홈페이지 개설 이후 무박 종주와 장거리 산행코스를 점점 늘려갔다. 당시까지만 해도 기존 코스를 답습하는 수준이었다. 2006년 따로 떨어져나와 J3클럽만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본격 장거리 코스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장거리 코스를 더 늘이고, 알려지지 않은 산들을 찾아다니며 등산로를 이었다. 장거리 코스도 태극 문양에 맞게 등산로를 찾아 헤맸다.


▲ 1 지리산 태극종주 덕산~인월 90.5km. 2 속초 해맞이광장에서 내설악 광장휴게소까지 설악산 태극종주 53km. 3 속리산 태극종주 도상거리 50.5km. 4 영남태극종주 101km. 5 영남실크로드 92km. 6 덕유산 태극종주 50.3km.

처음엔 미친 놈이란 말도 많이 들었다. 회원수도 늘어나지 않았다. 회원은 늘지 않아도 꾸준히 코스를 개척했다.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반응을 보였다. 회원 가입 문의가 계속 들어왔다. 2008년 한 해에만 11월 현재까지 1,000여 명이 가입했다. 이제 전국에 지부를 결성할 만큼 커졌다. 지부는 일종의 연락책일 뿐이다. 먼 지역일 경우 같은 지역에서 여러 대의 차가 가는 것보다 한 대의 차로 카풀해서 가기 위해 지부를 만들었다. 회비는 원래 없었고 지금도 없다. 비용은 전부 자기 부담이다. 본인이 쓴 만큼 지불하면 된다.


금요일 밤 떠나 월요일 새벽 도착해 출근도


회원은 다양하다. 공무원, 교사, 은행원, 경찰관, 자영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말에 시간을 내서 이틀, 또는 금요일 밤에 출발해 월요일 새벽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고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체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니 이틀을 안 자고 바로 출근해도 업무에 별 무리 없다고 했다.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이들 중에는 철인3종경기에 출전해서 입상한 사람이나 울트라 산악마라톤에서 상위에 랭크된 사람도 많다. 부부가 장거리 산행에 같이 나서는 경우도 있다.


▲ 동강 63km 트레킹 코스인 정선 용탄교~영월 섭새나루 구간의 바리소.

배병만씨와 J3가 개척한 코스는 수도 없이 많다. 지리산 태극무박종주 코스를 기존의 덕산~인월까지에서 태극문양에 맞게 어천에서 인월까지 늘렸다. 2007년 11월엔 설악산 태극종주를 개척했다. 속초 해맞이광장~대청~안산~한계리까지 53㎞를 무박으로 걷는 것이다. 인간한계에 대한 도전이다. 이 코스는 특히 굴곡이 심해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밤새워 꼬박 걸어 33시간 걸렸다.


장거리에 도전하는 이들은 말한다.


“처음 시작할 때 특히 힘들고, 약 5㎞ 정도 지나면 관성으로 걷기 시작한다. 10㎞ 지나고 20㎞부터 조금 힘든다는 사실을 느낀다. 30㎞ 지나면 힘이 들뿐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지친다. 이후부터는 체력보다는 정신력으로 걷는다. 몽롱한 상태에서 자연만 눈에 들어온다. 잠도 쏟아진다. 걸으면서 깜빡 졸기도 하고, 잠시 앉아서 10~20분 눈을 감는다. 지친 상태에서 깜깜한 밤거리를 헤드라이트만 켜고 앞만 보고 가면 가끔 헛것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잠시 눈을 감아줘야 헛것이 안 보인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의 성취감과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단거리 산행에서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다. 아마 이 느낌 때문에 장거리 산행에 푹 빠져 다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 화엄사~대원사 46km를 12시간7분만에 종주한 여성회원.

2008년 5월엔 덕유산 태극종주를 개척했다. 수승대에서 시작해서 호음산~칡목재~갈미봉~주능선~서봉~삿갓봉~영구산~학산교로 이어지는 코스도 대략 50㎞가 조금 넘는다. 태극문양을 맞추기 위해 배병만씨 혼자 수승대~호음산까지 4.6㎞를 5만분의 1 지도와 인공위성자료를 들고 등산로를 닦았다. 장비는 전기톱과 낫 등이다. 무성한 숲길에 등산로를 내기 위해 나뭇가지를 치고, 풀을 자르고, 산행 이정표도 100장이나 붙였다.


2008년 8월엔 충북 보은와 경북 상주에 걸쳐 있는 속리산 태극종주 코스를 만들었다. 두 지역의 경관 좋은 곳만 모아서 등산로를 만들었다. 이 코스도 도상거리만 50㎞ 더 된다. 실제거리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서원리에서 출발한 태극종주는 형제봉을 거쳐 문장대~쌍용공소까지 태극문양이 세로로 세워진 코스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7년 8월 영남실크로드 92㎞와 2008년 4월 남해섬 완전종주 56㎞를 개척했다. 거제도 남북 종주, 땅끝 종주, 마창진(마산~창원~진해) 종주, 불영사 환종주, 월출산 환종주, 내장산 환종주 등도 이들 손에 의해 등산로가 생겨났다.
종주는 이들이 귀가 교통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산길은 수십㎞를 거뜬히 걷지만 내려와서 차 있는 지점까지 가는 시간은 너무 지겨웠다. 차가 있는 지점까지 돌아올 코스를 개척할 필요성이 생겼다. 단순하지만 환종주를 개척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백두대간 종주를 12구간만에 끝내고 진부령에서 완주 기념사진.

100㎞ 이상 장거리 산행으로는 국립공원 연계산행으로 지리산~덕유산~가야산 180㎞ 종주가 있다. 또 속리산~월악산~소백산 139㎞, 오대산~설악산 79㎞ 코스도 개척했다. 한 마디로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 거리다. 이 코스를 잠 한 숨 자지 않고 간다. 의지의 한국인들이다.


2008년 백두대간을 11구간만에 끝낸 배규현(49)씨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며 나의 한계는 어디쯤일까를 느끼는 재미가 있으며, 이틀 꼬박 걷다보면 나뭇가지를 붙잡고 잠시 졸기도 하고, 졸다가 넘어지면 다시 정신이 돌아온다”며 “힘든 과정을 거쳐 목적지에 도달하면 그 성취감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장거리 산행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100㎞ 코스도 개발… 무박으로 꼬박 걸어


배씨는 낙동정맥도 보통 12구간으로 나눠서 하는 종주를 5구간만에 끝냈다. 지금은 ‘낙동 1,100㎞’에 도전하고 있다. 낙동강을 따라 낙동정맥과 백두대간 일부 구간을 거쳐 낙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 버릴 것도 없는 간단한 식사. / 58km 불영사 환종주 중 올무에 걸린 산양을 풀어주며 물을 먹이고 있다.

강성문(48)씨는 마라톤대회 출전을 위해 산에서 훈련하다 산이 주는 매력에 빠져 산행으로 전향(?)한 경우다.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 횟수가 20회가 넘는다. “J3클럽을 만나 종주코스를 경험하고 나니 마라톤보다 훨씬 감동이 다가오더라. 산이 주는 웅장함과 깊이를 자주 느끼게 됐다. 이젠 마라톤보다 종주, 환종주를 더 자주하고 있다.”


이들은 등산로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강길과 계곡길도 만든다. 강과 계곡 따라 유적지 순례하기, 십승지 답사, 섬 산행 등 테마산행도 자주 가진다. 동강 트레킹 코스를 개척할 때는 가슴까지 물이 차 배낭을 머리 위로 올려놓고 건너기도 했다. 응봉산에서는 올무에 걸려 기진맥진한 산양을 만나 물을 먹이고 간단히 치료해서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내기도 했다. 다행히 심한 부상이 아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J3클럽 홈페이지를 꾸미고 있는 책임자 배병만씨는 “처음에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장거리 산행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점차 이해하는 사람이 늘어나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보상 차원이 아닌 인간한계를 극복하는 장거리 산행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이해를 받고 싶고, 더 많은 회원들이 극기 산행에 동참했으면 한다”고 외연 확대를 기대했다.


/ 글 박정원 차장대우 jungwon@chosun.com
  사진 J3클럽 배병만씨 제공